2027학년도 6모 사회탐구 세계사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 · 2026년 6월 시행
2027학년도 6모 사회탐구 세계사 1등급컷은 원점수 50점(추정), 표준점수 최고점은 70점입니다.
원점수 1등급컷은 공식 발표값이 아니라 EBSi·입시기관 값입니다. 등급별 값은 등급컷 표,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 있습니다.
정답 변경 없음
원문 표에서 이 과목 문항을 찾지 못했어요
관련 보도
시험 전체 관련 보도 4건은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 회차 페이지에 모아 두었어요.
오답률 높은 문항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7번(2점)이고, 오답률은 55.9%입니다.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은 4개입니다.
| 순위 | 문항 | 배점 | 오답률 | 정답 | 많이 고른 오답 |
|---|---|---|---|---|---|
| 1 | 7번 | 2점 | 55.9% | ① | ② 20.5% |
| 2 | 12번 | 2점 | 50.8% | ① | ④ 17.5% |
| 3 | 4번 | 2점 | 50.8% | ④ | ① 16.6% |
| 4 | 18번 | 2점 | 50.5% | ② | ③ 20.5% |
| 5 | 14번 | 3점 | 46.7% | ② | ① 14.7% |
| 6 | 19번 | 3점 | 44.1% | ③ | ② 14.9% |
| 7 | 5번 | 2점 | 42.8% | ⑤ | ② 17.1% |
| 8 | 20번 | 2점 | 42.5% | ① | ④ 27.2% |
| 9 | 13번 | 3점 | 40.4% | ③ | ① 18.6% |
| 10 | 6번 | 3점 | 37.8% | ② | ④ 15.1% |
| 11 | 15번 | 2점 | 36.5% | ⑤ | ③ 15.8% |
| 12 | 10번 | 3점 | 35.4% | ⑤ | ③ 13.4% |
| 13 | 11번 | 3점 | 33.5% | ④ | ③ 9.7% |
| 14 | 2번 | 3점 | 32.8% | ④ | ② 9.9% |
| 15 | 9번 | 2점 | 32.6% | ③ | ④ 12.5% |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5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최근 회차와 비교 · 세계사
막대 색은 역대 대비 난이도 · 진한 막대가 이 시험 · 막대를 누르면 그 회차로 이동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 세계사 해설
3점보다 2점이 더 어려웠던 세계사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 세계사는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이 4개였고, 3점 문항보다 2점 문항의 오답률이 높았습니다. 입시기관 추정 1등급컷은 만점이었습니다.
7번: 당 건국 40여 년 만에 무너진 제국
가장 많이 틀린 7번(55.9%)은 2점짜리 서아시아사 문항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더스강 유역까지 다스렸고,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에서 져 멸망했으며, 그 무렵 당이 건국 40여 년 만에 서돌궐을 정복했다는 단서로 (가)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임을 찾아야 했습니다. 사산 왕조에서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고, 이 무렵 마니교가 등장했습니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에서 아케메네스 왕조를 떠올리거나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을 떠올리면 엇갈리기 쉬운 자료라, 당의 서돌궐 정복(7세기 중반)이라는 동아시아 쪽 시간 단서로 시기를 고정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입니다.
4번: 균수법과 청묘법의 나라
4번은 재정 수입을 늘리려 균수법을 시행하고, 청묘법에 따른 이자를 내야 했다는 자료로 송을 찾는 문항입니다. 왕안석은 청묘법·시역법·모역법·균수법·보갑법·보마법 같은 신법을 추진했고, 송은 거란(요)과 전연의 맹약(1004)을 맺어 해마다 비단과 은을 보냈습니다. 신법의 이름과 맹약의 상대를 함께 기억해야 하는 문항입니다.
12번과 18번
12번은 하르툼과 카이로 같은 아프리카 도시를 소재로 한 문항이고, 18번은 나이지리아를 차지한 영국과 카메룬을 선점한 독일의 경계 조약을 소재로 아프리카 분할 시기 두 나라의 제국주의 정책을 묻는 문항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