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동아시아사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2014년 11월 시행
2015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동아시아사 1등급컷은 원점수 48점(추정), 표준점수 최고점은 66점입니다.
원점수 1등급컷은 공식 발표값이 아니라 EBSi·입시기관 값입니다. 등급별 값은 등급컷 표,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 있습니다.
정답 변경 없음
원문 표에서 이 과목 문항을 찾지 못했어요
오답률 높은 문항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15번(2점)이고, 오답률은 70.4%입니다. 상위 15문항 중 1문항은 정답보다 한 오답을 고른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15번: 정답 ② 29.6%, ⑤ 50.2%).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은 2개입니다.
| 순위 | 문항 | 배점 | 오답률 | 정답 | 많이 고른 오답 |
|---|---|---|---|---|---|
| 1 | 15번 | 2점 | 70.4% | ② | ⑤ 50.2% |
| 2 | 17번 | 3점 | 51.2% | ③ | ④ 20.9% |
| 3 | 20번 | 3점 | 47.7% | ② | ④ 18.5% |
| 4 | 13번 | 2점 | 33.6% | ⑤ | ④ 12% |
| 5 | 6번 | 3점 | 32.1% | ③ | ④ 11.9% |
| 6 | 14번 | 3점 | 31.6% | ③ | ⑤ 9.2% |
| 7 | 7번 | 2점 | 31.3% | ① | ③ 13.6% |
| 8 | 12번 | 2점 | 26.3% | ⑤ | ③ 8% |
| 9 | 10번 | 2점 | 24% | ④ | ② 9.4% |
| 10 | 18번 | 2점 | 23.8% | ③ | ⑤ 10.4% |
| 11 | 8번 | 3점 | 23.7% | ① | ④ 7.8% |
| 12 | 9번 | 3점 | 23.6% | ① | ② 11% |
| 13 | 19번 | 3점 | 21.4% | ④ | ③ 7.1% |
| 14 | 11번 | 3점 | 18.9% | ② | ④ 8.8% |
| 15 | 2번 | 2점 | 14.5% | ② | ④ 7% |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5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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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학년도 수능 동아시아사 해설
2점짜리 역대 수도 15번, 50.2%가 한 오답에
동아시아사는 표준점수 최고점 66점, 1등급 구분 65점이었습니다.
15번: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있는 수도
가장 많이 틀린 15번(2점, 70.4%)은 역대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를 찾는 문항으로, 응답의 50.2%가 한 오답에 몰렸습니다. 자료의 단서는 어느 황제가 거대한 수도를 새로 건설해 제국 지배의 중심을 옮겼고, 이 수도가 동서 교류의 중심지였으며 공자 사당·황궁과 함께 티베트 불교 사원이 자리 잡았다는 것입니다. 쿠빌라이가 세운 원의 대도, 곧 베이징입니다. 베이징은 뒤에 청의 수도가 되었으므로 조선의 연행사가 목적지로 삼은 도시라는 ②가 정답입니다.
나머지 선택지는 모두 다른 도시를 가리킵니다. 송이 금의 침략을 받고 옮겨 간 곳은 임안(항저우)이고(①), 홍무제가 명을 세우고 수도로 삼은 곳은 난징입니다(③). 반제국주의를 내건 아주 화친회는 도쿄에서 결성되었고(④), 일본과 발해의 승려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한 곳은 당의 수도 장안입니다(⑤).
17번: 제2차 국공 합작과 베트남 독립 동맹
17번(51.2%)의 (가)는 쑨원의 삼민주의를 지침으로 삼고 홍군을 국민 혁명군으로 개편해 항일 전선에 나서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선언으로, 중일 전쟁 중의 제2차 국공 합작입니다. (나)는 종교·당파·계급을 묻지 않는 인민 전 계층의 연합과 베트남 민주 공화국 수립을 내건 베트남 독립 동맹의 강령입니다. 일본이 베트남에 진주하자 호찌민이 좌우 연합으로 결성한 조직이므로 일본의 침략에 저항할 것을 주장했다는 ③이 정답입니다.
쑨원이 주도한 것은 제1차 국공 합작이라 (가)와 맞지 않고(①), 21개조 요구에 대한 반발은 5·4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②). 베트남 공산당은 1930년에 창당되어 1941년의 베트남 독립 동맹보다 앞서고(④), 두 문서 모두 파리 강화 회의가 아니라 일본의 침략을 계기로 나왔습니다(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