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2017학년도

2017학년도 수능 한국사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2016년 11월 시행

2017학년도 수능 한국사 1등급 기준은 원점수 40점 이상(절대평가)입니다.

등급별 값은 등급컷 표,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 있습니다.

자료 · 등급컷이의신청 및 보도정답 변경

문제지

14번 복수 정답

이의신청 2문항 · 평가원 상세 답변 1문항

  • 14번복수 정답

    ① 외에 ⑤도 정답 (대한매일신보의 시일야방성대곡 게재)

문항별 이의신청 한국사

  • 14번정답 이의복수 정답답변 보기

    이의 요지

    이의 제기의 주된 내용은 답지 ⑤에서 언급한 시일야방성대곡이 대한매일신보에도 게재되었기 때문에 답지 ①과 함께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가원 답변

    이 문항은 교육과정에 제시되어 있는 애국 계몽 운동기에 발행된 대한매일신보의 특징과 활동상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의 제기의 주된 내용은 답지 ⑤에서 언급한 시일야방성대곡이 대한매일신보에도 게재되었기 때문에 답지 ①과 함께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의 신청 내용에 대해 전공 학회 및 외부 전문가에 자문한 결과, ‘대한매일신보는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논한 시일야방성대곡의 전문을 영어로 번역하여 게재하였다.’라는 사실이 답지 ‘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논한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하였다.’라는 진술에도 부합합니다. 그러므로 답지 ①과 함께 답지 ⑤를 정답으로 인정합니다.

  • 19번정답 이의이상 없음

관련 보도

오답률 높은 문항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17번(3점)이고, 오답률은 75.6%입니다. 상위 14문항 중 2문항은 정답보다 한 오답을 고른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17번: 정답 ⑤ 24.4%, ② 24.6%).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은 4개입니다.

순위문항배점오답률정답많이 고른 오답
117번3점75.6%⑤② 24.6%
27번3점71.9%②⑤ 33.3%
313번3점57.3%①② 25.9%
416번2점51.2%②① 25.7%
511번3점47.4%⑤② 15.3%
612번2점38.8%④③ 11.8%
79번2점33.5%④① 12.2%
85번2점28.5%①⑤ 12.3%
919번2점27.3%②⑤ 9.5%
104번2점24.6%④② 13.1%
1120번3점22.2%⑤② 9.5%
128번3점22%①② 7%
136번2점21.4%③④ 12.4%
1418번2점20.9%③① 7.3%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4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2017학년도 수능 한국사 해설

2026-10-15 수정 · 이 회차 전체 해설 보기

한국사 필수 첫해, 1등급 21.77%

한국사가 필수 영역으로 처음 지정된 시험입니다. 1등급(40점 이상)은 120,227명(21.77%), 3등급 이상은 57.5%였습니다. 대한매일신보를 다룬 14번은 ①번 외에 ⑤번도 정답으로 인정되는 복수 정답 처리가 있었습니다.

독립운동 방향 논의 17번 75.6%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오답률 1위는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한 (가)의 활동을 고르는 17번(3점, 75.6%), 2위는 태조의 통일 이후를 언급한 '우리나라'(고려)의 정책을 고르는 7번(71.9%)이었습니다. 13번(57.3%)은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관련된 자료를 활용한 탐구 활동 문항이었습니다.

17번·7번·14번의 단서와 선택지

17번의 (가)는 3·1 운동을 계기로 세워졌고, 그 개조를 두고 국민 대표 회의가 열린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임시 정부는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곧바로 대일 선전 포고문을 발표했으므로 ⑤가 정답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단체의 활동입니다. 대성 학교 설립은 신민회, 대한 자강회 조직은 애국 계몽 운동, 정우회 선언은 사회주의 세력,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사의 일입니다. 1920년대 국민 대표 회의라는 단서에서 1940년대 활동까지 이어 생각해야 해 오답률이 75.6%에 이르렀습니다.

7번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제시하고 '우리나라', 곧 고려의 정책을 묻습니다. 태조가 통일한 뒤 외관을 두지 못했다는 것, 연등회와 팔관회를 열었다는 것이 단서입니다. 태조가 통일 과정의 공신들에게 역분전을 지급한 ②가 정답이고, 5군영 정비·백동화 주조·상평통보 유통은 모두 조선의 일입니다.

14번은 치외 법권에 기대 신문지법을 피했고 양기탁과 함께 발행한 영국인 베델의 신문, 곧 대한매일신보를 묻습니다. 국채 보상 운동을 지원했다는 ①이 정답이었는데, 황성신문에 실렸던 「시일야방성대곡」을 호외에 영문판으로 실었다는 ⑤도 사실로 확인되어 평가원은 ①과 ⑤를 모두 정답으로 인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