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수능 한국사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2024년 11월 시행
2025학년도 수능 한국사 1등급 기준은 원점수 40점 이상(절대평가)입니다.
정답 변경 없음
원문 표에서 이 과목 문항을 찾지 못했어요
관련 보도
시험 전체 관련 보도 4건은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회차 페이지에 모아 두었어요.
오답률 높은 문항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13번(3점)이고, 오답률은 84.1%입니다. 상위 15문항 중 2문항은 정답보다 한 오답을 고른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13번: 정답 ① 15.9%, ③ 35.5%).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은 4개입니다.
| 순위 | 문항 | 배점 | 오답률 | 정답 | 많이 고른 오답 |
|---|---|---|---|---|---|
| 1 | 13번 | 3점 | 84.1% | ① | ③ 35.5% |
| 2 | 18번 | 2점 | 68.9% | ③ | ① 32.9% |
| 3 | 12번 | 2점 | 51.9% | ④ | ② 22.4% |
| 4 | 9번 | 3점 | 51.7% | ⑤ | ① 20.5% |
| 5 | 3번 | 3점 | 45.9% | ③ | ⑤ 26.9% |
| 6 | 19번 | 3점 | 45.7% | ② | ③ 19.7% |
| 7 | 5번 | 2점 | 42.8% | ① | ④ 22.9% |
| 8 | 7번 | 2점 | 39.4% | ⑤ | ② 21.4% |
| 9 | 4번 | 2점 | 37.7% | ③ | ④ 19.2% |
| 10 | 8번 | 3점 | 37.5% | ② | ④ 30.9% |
| 11 | 11번 | 3점 | 33.2% | ⑤ | ② 13.2% |
| 12 | 15번 | 2점 | 32.4% | ② | ③ 9.2% |
| 13 | 2번 | 3점 | 30.8% | ① | ② 25% |
| 14 | 6번 | 3점 | 27% | ④ | ③ 8.9% |
| 15 | 17번 | 3점 | 25.6% | ④ | ③ 17% |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5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2025학년도 수능 한국사 해설
1등급 19.62%, 연해주 문항이 84.1%
2025학년도 수능 한국사는 1등급 비율이 19.62%였고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은 4개였습니다. 가장 많이 틀린 13번은 오답률이 84.1%에 달해, 국외 독립운동 기지의 지역 구분이 이 회차의 핵심 변별 요소였습니다.
13번: 신한촌과 강제 이주의 땅
13번은 신한촌 건설, 이동휘를 중심으로 한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1937년 소련이 이 지역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일을 단서로 (가) 지역이 연해주임을 찾게 했습니다. 연해주 신한촌에서는 권업회가 조직되어 『권업신문』을 냈습니다. 선택지에는 서간도의 신흥 강습소(뒤의 신흥 무관 학교), 북간도의 서전서숙·명동 학교처럼 다른 국외 기지의 활동이 함께 놓였습니다.
연해주, 서간도, 북간도, 상하이, 미주가 모두 독립운동 기지였기 때문에 '국외에서 학교를 세웠다'처럼 활동 유형만으로는 구분되지 않습니다. 강제 이주(1937)처럼 그 지역에만 있었던 사건을 기준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18번: 여소야대와 3당 합당
18번(2점)은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가 되었고, 여당인 민주 정의당이 통일 민주당·신민주 공화당과 합쳐 과반의 민주 자유당을 만들었다는 자료(3당 합당, 1990)로 노태우 정부를 찾는 문항입니다. 같은 정부의 북방 외교,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1991)이 이 시기의 사실입니다.
12번과 9번
12번은 베델이 양기탁과 함께 창간한 대한매일신보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을 지원해 전국으로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는 문항, 9번은 '구속된 광주 조선 학생을 즉시 탈환하라'는 격문과 한·일 학생의 충돌에서 시작된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찾는 문항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