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학년도 수능 한국사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2021년 11월 시행
2022학년도 수능 한국사 1등급 기준은 원점수 40점 이상(절대평가)입니다.
정답 변경 없음
원문 표에서 이 과목 문항을 찾지 못했어요
관련 보도
시험 전체 관련 보도 2건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회차 페이지에 모아 두었어요.
오답률 높은 문항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7번(3점)이고, 오답률은 56.2%입니다.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은 3개입니다.
| 순위 | 문항 | 배점 | 오답률 | 정답 | 많이 고른 오답 |
|---|---|---|---|---|---|
| 1 | 7번 | 3점 | 56.2% | ④ | ① 29.1% |
| 2 | 14번 | 2점 | 53% | ② | ① 18.8% |
| 3 | 20번 | 3점 | 52.3% | ③ | ② 25.4% |
| 4 | 17번 | 3점 | 48.3% | ⑤ | ② 20.4% |
| 5 | 6번 | 2점 | 44.2% | ③ | ② 22.5% |
| 6 | 5번 | 3점 | 29.3% | ⑤ | ② 14.3% |
| 7 | 8번 | 2점 | 25.4% | ③ | ⑤ 10.9% |
| 8 | 11번 | 2점 | 24.7% | ① | ③ 10.7% |
| 9 | 15번 | 3점 | 23.7% | ④ | ⑤ 12.4% |
| 10 | 9번 | 3점 | 22.8% | ② | ④ 9.4% |
| 11 | 3번 | 2점 | 19.5% | ⑤ | ④ 7.1% |
| 12 | 2번 | 3점 | 18.9% | ③ | ② 10.7% |
| 13 | 18번 | 2점 | 16.2% | ③ | ② 6.5% |
| 14 | 13번 | 2점 | 16.2% | ① | ② 7.1% |
| 15 | 19번 | 3점 | 14.6% | ⑤ | ④ 4.6% |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5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2022학년도 수능 한국사 해설
1등급 37.57%, 평이했던 한국사
2022학년도 수능 한국사는 1등급 비율이 37.57%(168,379명)로 전년(34.32%)보다 높았습니다.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오답률 50%를 넘긴 문항은 3개였습니다.
7번, 전황과 신해통공
7번(3점, 56.2%)의 자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근래 전황(錢荒)이 매우 심하니 상평통보보다 재료가 덜 드는 새 화폐를 함께 쓰자'는 건의이고, 다른 하나는 '신해년의 통공 이후 금난전권을 잃은 시전 상인들이 평시서의 국역 부과에 불만을 토로한다'는 내용입니다. 1791년 신해통공을 기준으로 조선 후기, 정조 무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시기 모습은 담배를 비롯한 상품 작물이 재배되었다는 ④입니다. 전시과(고려), 벽란도 송 상인(고려), 산미 증식 계획(일제 강점기), 금융 실명제(1990년대)는 모두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14번, 와세다 대학 스코트 홀
14번(2점, 53.0%)은 1927년 도쿄 지회 창립 대회가 열린 와세다 대학 스코트 홀 사진과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같은 강령,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 진상 조사단 파견으로 신간회를 찾는 문항입니다. 신간회는 사회주의 세력이 민족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내세운 정우회 선언을 계기로 결성되었다는 ②가 정답이었습니다. 국채 보상 운동, 을미의병,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독립 협회의 절영도 조차 저지는 다른 시기의 일입니다.
20번, 1990년 한·소 수교와 2000년 6·15
20번(3점, 52.3%)의 (가)는 서울 올림픽 2년 뒤인 1990년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 회담, (나)는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입니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은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③)입니다. 7·4 남북 공동 성명(1972), 통일 주체 국민 회의 설치(1972), 정전 협정(1953),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은 모두 그 이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