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변경 없음
이의신청 2문항
문항별 이의신청 사회탐구 한국사
- 9번문제 이의이상 없음
- 14번정답(문제) 이의이상 없음
관련 보도
시험 전체 관련 보도 4건은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회차 페이지에 모아 두었어요.
오답률 높은 문항
시험지를 먼저 풀어 보세요. 점수와 인원 수치는 흐리게 가려 뒀어요.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9번(2점)이고, 오답률은 69.4%입니다. 상위 15문항 중 1문항은 정답보다 한 오답을 고른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9번: 정답 ② 30.6%, ① 32.2%).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은 4개입니다.
| 순위 | 문항 | 배점 | 오답률 | 정답 | 많이 고른 오답 |
|---|---|---|---|---|---|
| 1 | 9번 | 2점 | 69.4% | ② | ① 32.2% |
| 2 | 18번 | 2점 | 57.3% | ① | ③ 19.4% |
| 3 | 8번 | 3점 | 54.7% | ③ | ④ 34% |
| 4 | 14번 | 3점 | 50.3% | ② | ④ 13.9% |
| 5 | 19번 | 3점 | 48.7% | ⑤ | ① 13.3% |
| 6 | 7번 | 3점 | 48.4% | ⑤ | ③ 15.8% |
| 7 | 12번 | 3점 | 46.5% | ① | ④ 11.5% |
| 8 | 13번 | 2점 | 46.3% | ③ | ② 15.8% |
| 9 | 6번 | 2점 | 45.8% | ③ | ⑤ 22.3% |
| 10 | 11번 | 3점 | 44.9% | ① | ⑤ 9.9% |
| 11 | 10번 | 3점 | 44.6% | ② | ③ 12.1% |
| 12 | 15번 | 2점 | 43.3% | ① | ② 19.5% |
| 13 | 17번 | 2점 | 40.3% | ② | ⑤ 13% |
| 14 | 4번 | 3점 | 38.4% | ④ | ② 18.3% |
| 15 | 16번 | 3점 | 38.2% | ③ | ① 6.8% |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5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2016학년도 수능 한국사 해설
선택 과목 한국사의 마지막 수능, 만점자 10.47%
한국사는 아직 사회탐구 선택 과목이었습니다. 표준점수 최고점과 1등급 구분 표준점수가 모두 63점이었고, 만점자가 10.47%에 달해 만점이어야 1등급이었습니다. 다음 해부터 한국사는 필수 영역이 되어 절대평가로 바뀌었습니다.
9번: 일본과의 조약문과 청·일 양국 문서
가장 많이 틀린 9번(2점, 69.4%)은 두 자료의 밑줄 친 '변란'에 대한 설명을 고르는 문항이었습니다. ㉠은 김홍집에게 전권을 맡겨 협의하고 일본 공관을 새로 지을 터와 건물을 내주기로 한 조약문에 나오는 1884년 갑신정변입니다. ㉡은 조선의 요청으로 출병했다가 화약으로 끝난 변란, 두 나라 군대가 계속 머무는 데 반대한다는 문서에 나오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제1차 봉기입니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혁신 정강 14개조를 내세워 근대 국가를 세우려 한 것이 갑신정변이므로 ②가 정답입니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은 임오군란(1882)이 계기였습니다. 남접과 북접의 연합은 제1차가 아니라 제2차 봉기 때의 일입니다. '변란'이라는 표현과 조약 용어 때문에 두 사건을 특정하기가 까다로웠습니다.
18번: 1979년 10·26과 12·12 사이
18번(57.3%)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가 대통령을 뽑았고 일부 군인이 육군 참모 총장을 연행해 군권을 장악했다는 대화, 곧 1979년 10·26 사태 이후 최규하 대통령 선출과 12·12 사태 무렵의 경제 상황을 묻습니다. 1979년 한국은 제2차 석유 파동으로 불황을 겪고 있었으므로 ①이 정답입니다. 외환 위기 극복은 1990년대 말,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은 1972~1976년, 3저 호황은 1980년대 후반, 무상 원조에서 유상 차관으로의 전환은 1950년대 말의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