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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 답변
민정문서는 통일신라기 수취체제와 촌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교과서는 본문에 사진, 내용, 작성 방식을 서술하고 있습니다.(141쪽) 문제에서 표를 이용하여 세세하게 내용을 제시한 것은 민정문서 자체에 대한 지식과 함께 역사자료를 해석, 이해하는 능력을 측정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자료를 통해 호등제, 인구 구성 등을 추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수능시험의 취지에도 부합합니다. 그리고 말의 수를 집어넣은 것은 민정문서의 기록 대상이 된 촌락의 성격을 묻기 위한 것입니다. 말의 수가 많다는 것은 제시한 호의 최고 호등이 중하호인데도, 1호당 1.4마리 정도를 갖고 있으므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촌락의 위치가 국경지대일 것이라는 추론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실제로 이들 촌락은 서원경과 그 근처에 있던 촌락들로서 국경지대와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지적하신 바와 달리 역사 지식과 자료 해석력, 합리적 추론 능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사회탐구 영역 :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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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 답변
1. 문제의 지문은 단군을 개국시조로 하는 역사시인 이승휴의 「제왕운기」입니다.
2. 문제의 지문에 나오는 ‘소중화’라는 표현은 고려 성종대 최승로의 시무28조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고, 무신집권기 진화의 시에서도 그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중화’에 대해서, 명이 망한 뒤 중화의 전통이 우리에게 계승된 것으로 북벌론의 논리적 근거 혹은 영정조 시대의 진경문화 등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그 근본은 성리학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신 것은 ‘소중화’에 대한 기계적 해석이고 오해입니다.특히, 몽고간섭시대에 나타난 정신세계의 변화로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지탱해온 화이관의 붕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나타나는 ‘소중화’ 의식은 성리학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몽고의 중원 지배로 말미암아 중화의 우위성이 권위를 잃게 되었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도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민족의식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몽고간섭시대의 역사서술에서 처음으로 단군을 국조로 인식하는 역사의식상의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고, 그것이 지문에 나와 있는 이승휴의 「제왕운기」(1287)에 반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중국사와 동국사가 다 같은 제왕의 후예로 인식되고 있고, 삼한․삼국은 모두 단군의 후예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3. “중국과 확연히 구분되는 요하 동쪽 별천지”와 “여기가 조선이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화-소중화로 이어지는 단선적이고 일원적인 조선시대 ‘소중화’ 의식과는 달리, 중국과 우리 조선을 각각의 독자적인 세계로 파악하면서 그 뿌리로서 단군에 주목하는 민족의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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