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2023학년도매우 쉬움

2023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동아시아사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2022년 11월 시행

2023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동아시아사 1등급컷은 원점수 50점(추정), 표준점수 최고점은 65점입니다.

원점수 1등급컷은 공식 발표값이 아니라 EBSi·입시기관 값입니다. 등급별 값은 등급컷 표,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 있습니다.

자료 · 등급컷이의신청 및 보도

문제지

정답 변경 없음

원문 표에서 이 과목 문항을 찾지 못했어요

관련 보도

시험 전체 관련 보도 4건은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회차 페이지에 모아 두었어요.

오답률 높은 문항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6번(3점)이고, 오답률은 65.5%입니다. 상위 15문항 중 1문항은 정답보다 한 오답을 고른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6번: 정답 ② 34.5%, ④ 41.8%).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은 2개입니다.

순위문항배점오답률정답많이 고른 오답
16번3점65.5%②④ 41.8%
210번2점61.1%①③ 29.4%
311번3점48.8%④① 29%
420번2점44.2%⑤③ 16%
515번2점44%②③ 15.5%
616번3점43.9%④① 21.4%
79번3점41.3%④③ 26%
812번3점30%③② 10.4%
94번3점24.8%⑤③ 6.9%
1017번2점23.6%②④ 6.6%
118번3점22%⑤④ 10.9%
1219번3점21.6%④③ 9.1%
132번2점20.3%⑤② 6.7%
145번3점18%②③ 6.3%
153번2점15.7%③④ 7.7%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5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최근 회차와 비교 · 동아시아사

막대 색은 역대 대비 난이도 · 진한 막대가 이 시험 · 막대를 누르면 그 회차로 이동

회차1등급컷표점 최고1등급 표점난이도
수능2023학년도이 시험506565매우 쉬움
9모2023학년도506666쉬움
6모2023학년도506969어려움
수능2022학년도506666매우 쉬움
9모2022학년도477168매우 어려움
6모2022학년도506868보통

2023학년도 수능 동아시아사 해설

2026-10-15 수정 · 이 회차 전체 해설 보기

최고점 65점, 50% 넘긴 문항 2개

동아시아사 표준점수 최고점은 65점으로 사회탐구에서 가장 낮았고, 오답률 50%를 넘긴 문항도 2개뿐이었습니다. 다만 그 두 문항에서는 오답이 한쪽으로 크게 쏠렸습니다.

6번, 태평천국과 같은 시기의 조약

6번(3점, 65.5%)의 자료에는 몇 해 전 오랑캐가 난징의 천왕을 찾아왔다는 이야기와, 만여 명의 군사가 북쪽 수도까지 쳐들어가 황제를 굴복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태평천국 운동(1851~1864)이 벌어지던 중 제2차 아편 전쟁의 결과로 1860년에 맺은 베이징 조약을 가리킵니다. 1858년 톈진 조약을 비준한 이 조약에 따라 청에서 크리스트교 선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는 ②가 정답이었습니다. 시모노세키 조약 같은 청일 전쟁 이후의 조약이 오답으로 섞여 있었고, 응답의 41.8%가 한 오답에 몰렸습니다.

10번, 6진과 호한 융합의 북위

10번(2점, 61.1%)은 화북을 통일하고, 호한 융합 정책의 하나로 뤄양으로 천도했으며, 뒤에 동·서 두 왕조로 갈라진 왕조로 북위를 찾는 문항입니다. 5세기 전반 화북을 통일한 북위가 남쪽의 송과 대립했다는 ①이 정답입니다. 석경당이 후진을 세울 때 도운 대가로 연운 16주를 받은 거란(요)이 오답으로 쓰였습니다.

11번, 슈인장을 든 배

11번(3점, 48.8%)은 막부의 슈인장을 지닌 배가 동남아시아를 오가다 크리스트교 선교사가 몰래 탄 사실이 드러나 발급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자료입니다. 에도 막부가 해금을 본격화하기 전인 17세기 전반이라는 시기를 잡고, 그 무렵 마카오를 근거지로 일본과 명 사이를 중계하던 포르투갈 상인의 활동을 떠올려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