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고3 학력평가 사회탐구 세계사
전국연합학력평가 · 시·도교육청 주관
2016년 7월 고3 학력평가 사회탐구 세계사 1등급컷은 원점수 48점(추정), 표준점수 최고점은 71점입니다.
원점수 1등급컷은 공식 발표값이 아니라 EBSi·입시기관 값입니다. 등급별 값은 등급컷 표,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 있습니다.
오답률 높은 문항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17번(3점)이고, 오답률은 38.1%입니다.
| 순위 | 문항 | 배점 | 오답률 | 정답 | 많이 고른 오답 |
|---|---|---|---|---|---|
| 1 | 17번 | 3점 | 38.1% | ③ | ① 16.2% |
| 2 | 13번 | 3점 | 24.4% | ① | ③ 8.2% |
| 3 | 15번 | 3점 | 24.2% | ③ | ④ 9.5% |
| 4 | 20번 | 3점 | 23.9% | ② | ③ 8% |
| 5 | 18번 | 3점 | 23.3% | ③ | ④ 7.1% |
| 6 | 4번 | 3점 | 23.3% | ② | ① 10.7% |
| 7 | 11번 | 3점 | 22.6% | ② | ③ 7.3% |
| 8 | 14번 | 2점 | 20.6% | ⑤ | ① 8.2% |
| 9 | 16번 | 2점 | 20.4% | ⑤ | ② 7.7% |
| 10 | 5번 | 3점 | 20.2% | ④ | ① 6.4% |
| 11 | 10번 | 2점 | 18% | ② | ③ 4.9% |
| 12 | 12번 | 3점 | 17.8% | ④ | ① 4.2% |
| 13 | 8번 | 3점 | 17.5% | ① | ② 5.5% |
| 14 | 19번 | 2점 | 15.1% | ① | ② 3.6% |
| 15 | 7번 | 2점 | 14% | ④ | ③ 5.3% |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5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시·도교육청(전국연합학력평가).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최근 회차와 비교 · 세계사
막대 색은 역대 대비 난이도 · 진한 막대가 이 시험 · 막대를 누르면 그 회차로 이동
| 회차 | 1등급컷 | 표점 최고 | 1등급 표점 | 난이도 |
|---|---|---|---|---|
| 7월 학평2016년 고3이 시험 | 48 | 71 | 70 | 쉬움 |
| 4월 학평2016년 고3 | 47 | 73 | 71 | 보통 |
| 3월 학평2016년 고3 | 47 | 72 | 70 | 쉬움 |
| 10월 학평2015년 고3 | 50 | 67 | 67 | 매우 쉬움 |
| 7월 학평2015년 고3 | 50 | 68 | 68 | 매우 쉬움 |
| 4월 학평2015년 고3 | 47 | 74 | 72 | 어려움 |
| 3월 학평2015년 고3 | 47 | 73 | 71 | 쉬움 |
| 10월 학평2014년 고3 | 50 | 66 | 66 | 매우 쉬움 |
| 7월 학평2014년 고3 | 45 | 74 | 70 | 어려움 |
| 4월 학평2014년 고3 | 47 | 74 | 71 | 보통 |
2016년 7월 고3 학력평가 세계사 해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13번
세계사는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이 없었고 1등급 구분 원점수는 48점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틀린 17번(3점, 38.1%)은 외국과의 교제를 논한 글이 쓰인 시기 일본의 모습을 묻는 문항이었습니다.
13번(24.4%)은 1453년 대포 소리가 멈춘 새벽,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을 다룬 글로 (가) 제국을 묻는 문항, 15번(24.2%)은 언론을 탄압하고 선거권을 제한한 샤를 10세를 몰아낸 7월 혁명의 결과를 묻는 문항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과 7월 혁명
13번의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은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대포를 앞세워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킨 사건으로, 이후 도시는 이스탄불로 불리며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5번의 7월 혁명(1830)은 샤를 10세가 언론 탄압과 선거권 제한으로 반동 정치를 펴자 파리 시민이 일으킨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오른 7월 왕정이 들어섰고 벨기에의 독립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