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고3 학력평가 사회탐구 세계사
전국연합학력평가 · 시·도교육청 주관
2018년 3월 고3 학력평가 사회탐구 세계사 1등급컷은 원점수 45점(추정), 표준점수 최고점은 78점입니다.
원점수 1등급컷은 공식 발표값이 아니라 EBSi·입시기관 값입니다. 등급별 값은 등급컷 표,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 있습니다.
오답률 높은 문항
EBSi 응답자 기준으로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13번(2점)이고, 오답률은 48.4%입니다.
| 순위 | 문항 | 배점 | 오답률 | 정답 | 많이 고른 오답 |
|---|---|---|---|---|---|
| 1 | 13번 | 2점 | 48.4% | ② | ⑤ 11.1% |
| 2 | 17번 | 3점 | 47.2% | ② | ④ 23% |
| 3 | 12번 | 3점 | 44.9% | ① | ③ 10.8% |
| 4 | 16번 | 2점 | 37.5% | ④ | ⑤ 8.3% |
| 5 | 5번 | 3점 | 36.5% | ② | ⑤ 11.6% |
| 6 | 11번 | 2점 | 35.2% | ① | ② 8% |
| 7 | 6번 | 3점 | 35.1% | ③ | ⑤ 14.3% |
| 8 | 19번 | 2점 | 29.5% | ④ | ① 7.7% |
| 9 | 10번 | 2점 | 29.5% | ⑤ | ③ 7.3% |
| 10 | 15번 | 3점 | 29.2% | ① | ⑤ 7.7% |
| 11 | 20번 | 2점 | 29.1% | ① | ③ 8.3% |
| 12 | 9번 | 2점 | 28.4% | ⑤ | ② 7.7% |
| 13 | 2번 | 3점 | 28.1% | ① | ⑤ 7.4% |
| 14 | 7번 | 3점 | 27% | ④ | ③ 7.1% |
| 15 | 4번 | 2점 | 25.5% | ② | ③ 5.4% |
EBSi 가채점 응답자 기준 · 전 문항 중 오답률 상위 15문항
출처: EBSi 역대 등급컷·오답률 공개 화면. 가채점에 참여한 EBSi 이용자 응답이라 전체 응시자 정답률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 출처
발행 기관: 시·도교육청(전국연합학력평가). 파일 위치: 이 사이트가 보관한 사본. 저작권은 발행 기관에 있습니다. 원본과 다르거나 게시 중단이 필요하면 연락처로 알려 주세요. 등급컷 출처 구분은 데이터 원칙에서 설명합니다.
최근 회차와 비교 · 세계사
막대 색은 역대 대비 난이도 · 진한 막대가 이 시험 · 막대를 누르면 그 회차로 이동
| 회차 | 1등급컷 | 표점 최고 | 1등급 표점 | 난이도 |
|---|---|---|---|---|
| 3월 학평2018년 고3이 시험 | 45 | 78 | 73 | 매우 어려움 |
| 10월 학평2017년 고3 | 47 | 69 | 67 | 보통 |
| 7월 학평2017년 고3 | 47 | 72 | 70 | 보통 |
| 4월 학평2017년 고3 | 48 | 72 | 70 | 보통 |
| 3월 학평2017년 고3 | 47 | 74 | 72 | 매우 어려움 |
| 10월 학평2016년 고3 | 50 | 68 | 68 | 매우 쉬움 |
| 7월 학평2016년 고3 | 48 | 71 | 70 | 쉬움 |
| 4월 학평2016년 고3 | 47 | 73 | 71 | 보통 |
| 3월 학평2016년 고3 | 47 | 72 | 70 | 쉬움 |
| 10월 학평2015년 고3 | 50 | 67 | 67 | 매우 쉬움 |
2018년 3월 고3 학력평가 세계사 해설
쓰촨 철도 국유화 13번
세계사는 오답률 50%를 넘은 문항이 없었지만 1등급 구분 원점수는 45점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틀린 13번(2점, 48.4%)은 새 내각이 쓰촨 철도를 국유화하겠다고 발표한 데 반발한 선언 이후의 사실을 묻는 문항이었습니다.
17번(47.2%)은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가 연 왕조, 12번(44.9%)은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통치권을 반환한 선언을 계기로 성립한 정부, 16번(37.5%)은 『도성기승』에 기록된 수도 카이펑의 시장 문항이었습니다.
쓰촨 철도 국유화와 무아위야
13번의 쓰촨 철도 국유화 발표(1911)에 반발한 보로 운동은 신해혁명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우창 봉기와 각 성의 독립 선언, 1912년 중화민국 수립과 위안스카이의 대총통 취임, 청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17번의 무아위야가 연 왕조는 우마이야 왕조(661)로, 칼리프 세습을 시작하고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았으며 아랍인 우대 정책을 폈습니다. 12번의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한 대정봉환(1867) 뒤 메이지 정부가 성립했고, 16번의 『도성기승』은 남송 수도 임안(항저우)의 번화함을 기록했다는 점도 함께 봅니다.
